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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소설-스토리 문학- 부석사 선비화-느티나무-bumsun.kr
<나무스토리>
선비화
-부석사 조사당 골담초-
김범선(소설가)
부석사 조사당(祖師堂)축대에는 높이 1,8m의 골담초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골담초의 수령이 1,300년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골담초(骨擔草)는 콩과의 골담초에 속하는 갈잎 떨기나무이다. 키가 작고 줄기는 곧아 집 앞 울타리나 마당에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골담초는 해수, 고혈압, 신경통, 타박상에 효과가 있으며 진통, 통맥에 효능이 있어 여러 가지 약재로 많이 사용이 된다.
영주에 수지침을 전공하는 어떤 사람의 부인이 허리를 골절 당하여 정형외과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을 하고 있었다. 부인이 나이가 들어 골절부분이 쉽게 접착이 되지 않아 남편은 무척 고민을 하였다. 그런데 안정에 사는 어떤 할머니가 골담초를 한번 써보라고 했다. 그래서 민간요법으로 골담초를 다려서 복용을 했더니 쉽게 뼈가 붙더라고 했다. 그분은 골담초가 뼈를 부치는 본드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었다. 뼈골(骨)자가 그냥 나무 이름에 붙인 게 아니라고 말했다.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호) 축대 앞에 골담초는 선비화(禪扉花)라고 부른다. 의상조사(625-702)께서 당에서 귀국을 할 때 지팡이를 가지고 왔는데 열반을 하실 때
“이 지팡이를 비와 이슬이 맞지 않은 곳에 꽂아 두면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필 것이다. 그때는 국운이 흥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문도들이 지팡이를 조사당 축대에 꽂아 두었더니 비와 이슬을 맞지 않았는데도 사월 초파일에 꽃이 피었다. 이 나무는 1,300년의 수령에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조사님의 지팡이 크기로 그대로 남아 있을 모양이다.
1714년(숙종 38년)에 이중환이 쓴 택리지가 있다. 택리지(擇里志)는 조선의 지형, 풍토, 교통, 풍속과 각 지역의 고사나 인물들을 기록해 놓았다. 당시 이중환이 이 책을 저술할 당시에는 책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뒤에 이긍익이 팔역복거지(八域卜居志)라고 부른 것을 줄여서 팔역지(八域志) 라고 했다. 택리지(擇里志)는 후세 사람들이 붙인 책의 이름이다.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는 조선 광해군 때 경상감사 정조(鄭造)가 부석사에 와서 선비화를 보고 의상조사의 지팡이 나무라고 하자, 자기도 지팡이를 만들어 보고 싶다며 나무 윗부분 가지를 잘라서 가지고 갔다. 그래서 지금 선비화 나무는 원줄기에서 여러 개의 나뭇가지로 갈라졌다.
윗가지를 잘라도 선비화는 의상조사의 지팡이 높이만큼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선비화를 잘라간 정조는 후일 역모협의로 처형을 당했다.
선비화는 일제강점기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그러나 8.15 해방이 되자 조사의 예언대로 36년 만에 꽃이 피었다. 의상조사는 661년(문무왕1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화엄의 이치를 공부하고 귀국하였다. 의상조사의 귀국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당의 고종(高宗)은 신라의 3국 통일에 많은 지원을 했다. 소위 나당(羅唐) 연합군이 3국을 통일 한 것이다.
그런데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을 한 후에 당에게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 고종은 대노하여 신라 승상 김흠순(金欽純)을 잡아 가두고 출병을 준비하였다. 김흠순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의상조사는 급거 귀국하여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고 밀단법(密壇法)을 베풀어 화를 면하게 하였다. 선묘낭자는 의상조사가 중국에 유학을 할 때 머물었던 집의 딸이었다.
낭자는 평소 의상을 사모하였다. 의상은 선묘낭자가 자기를 뒤따라 올 것을 걱정하여 낭자에게는 알리지 않고 신라왕에게 당의 출병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귀국을 하였다. 이 사실을 안 낭자는 용이 되어 의상의 귀국을 돕겠다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선묘낭자의 설화도 여기서 유래 된 것 이다.
조사당 골담초의 잎은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여인에게는 자식을 낳게 하고 아들을 못 낳는 여인들에게는 득남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 잎을 따가 나뭇가지를 많이 훼손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나무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철책을 둘러 가까이 갈 수 없도록 하였다.
이 세상은 우리가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일도 아주 많이 있다. 수령 1,300년이나 되는 골담초가 1.8m에서 성장을 멈춘 것도 그렇고 전설 속에 골담초가 의상조사의 지팡이 크기로 남아 있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 수분이 없는 곳에서 나무가 생존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선비화(禪扉花)의 체험(體驗)은 의상조사가 후세 사람들에게 남긴 하나의 법문(法門)이다. 바로 그 신밀(神密)은 골담초의 모습으로 일체세간의 현상을 이치(理致)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0. 부석사 선비화(浮石寺 禪扉花)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조사당 축대
나무 높이 : 180cm
굵기 : 약 5cm
수령 : 1,300년(설화에 의한 추정)
분류 : 콩과 골담초속 갈잎 떨기나무
---김범선의 소설이야기-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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