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6/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사랑아 사랑아

영주시의 설화 선묘의 사랑 본문

퍼온글

영주시의 설화 선묘의 사랑

왕머스마 2013. 4. 21. 21:29

영주시의 설화 선묘의 사랑

 

이 고장에는 사찰연기설화·지명유래담·자연물에 관한 전설 등이 전한다. 부석면의 부석사는 신라 때 의상이 창건한 절로 연기설화가 전해진다. 의상은 입산한 지 8년 만에 뜻을 품고 당나라로 갔는데 양주에서 병을 얻어 성의 수위장집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의 딸 선묘가 의상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의상이 완쾌되어 떠나던 날 선묘는 귀국할 때 꼭 다시 들러달라고 부탁하였다. 의상은 지상사에서 지엄대사 밑에서 수학하다가 당나라가 신라를 침범하려는 것을 알고 서둘러 귀국하였다.

 

도중에 선묘의 집에 들렀으나 마침 출타중이어서 만나지 못하였다. 뒤늦게 이를 안 선묘가 의상을 뒤쫓아와 바다 저 멀리 사라지는 배를 보고 만들어두었던 옷을 던지며 축원하니 해풍이 일어 의상에게 날라다주었다.

 

선묘는 이어 용이 되어 의상의 귀국을 돕게 해달라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용이 된 선묘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귀국한 의상은 당나라의 침략 의도를 알리고 방비하게 하였다. 그 뒤 사찰을 건립하라는 왕명을 받고 봉황산에 터를 잡으려 했으나 먼저 자리를 잡은 이교도들 때문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때 용이 큰 바위를 세 차례나 공중에 들어올렸다 놓으니, 이교도들이 겁을 먹고 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건립한 것이 부석사이다. 그리고 그 큰 바위는 무량수전 서편 암벽 밑에 자리잡고 있다. 선묘룡은 수호신으로 안좌했는데 무량수전 주불 밑에서 석등까지 뻗쳐 있어 비늘 모습까지 아련하게 석룡으로 남아 있다.

 

이산면의 산기슭에 있는 바위는 홈이 패어 원래 술이 흘러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흘러내리는 술을 마시고 그늘 아래 쉬어가곤 하였다. 그런데 두 잔 이상을 마시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어느 날 만취한 행인이 이 곳에 들러 여러 잔을 연거푸 마시고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는 술바위에서 술이 흐르지 않았고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또한, 휴천동의 뒷산에는 뚜껍바위 혹은 뚜껑바위·갓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어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에 송석이라는 아이가 10리 떨어진 문정동에 글공부를 하러 다녔다. 그 아이는 바보 같아서 언제나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다.

 

어느 날 서당의 연못 옆에서 잠이 든 아이는 못 속의 잉어를 먹으면 힘이 난다는 스승의 말이 생각나 그대로 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장수가 되어 그 힘이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대추나무를 뽑아내고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들어올리는 등 그의 힘은 대단하였다.

 

그러자 이를 두려워한 간신들은 모함하기에 이르렀고, 집안에서도 화를 면하려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 어느 날 송장사는 어머니에게 겨드랑이의 잉어비늘을 떼어내면 죽게 된다고 실토하였다. 어머니는 간신들의 모함에 빠져 송장수가 자는 사이에 비늘을 떼어내고 말았다.

 

그가 죽은 지 며칠 안 되어 그를 태우려던 용마가 등에 갑옷을 싣고 못둑을 돌며 울다가 갑옷을 뚜껍바위에 놓고 사라져버렸다. 지금도 이 바위를 헤치려고 하면 우뢰가 치고 소나기가 내린다.

 

일설에는 힘이 센 장사가 살았는데, 악행만 골라 하므로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 장사를 죽였고, 이후 그의 무덤 앞에 백마가 울고 가더니 그의 갑옷이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 밖에도 지네바위·금계바위 등의 전설, 배점의 지명유래담, 방석사·희방사의 내력, 안정면의 조개섬 모양의 지형에 따른 사연 등이 전한다.

Comments